네이버 블로그 작성일 2021. 9. 30. 22:51

이 작품을 하게 된 건 순전히 남의 추천때문입니다. 저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걸 좋아하고 플레이하는 작품들도 보통 커다란 사건이 벌어져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는게 대부분입니다. 씨베드도 줄거리만 보기에는 제가 끌릴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일러스트도 특출난 부분이 없고 심지어 동인 회사 작품이죠. 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한 몇몇 사람들이 씨베드를 아주 열정적으로 추천하고 한글 번역까지 만드는 걸 보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그리고 사서 방치하고는 몇 년이 지나서야 플레이를 하고 어느 날 밤에 엔딩을 봤습니다. 누구도 깨어있지 않은 조용한 밤에 심장이 꽉 조이면서 눈물이 한 방울 함께 흘려내렸습니다.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결말에 관해서도 어느정도 이야기하게 됩니다. 초반부를 제외한 직접적인 스포를 하지 않으나 작품의 내용을 최대한 모른 상태로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분은 밑의 내용을 안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씨베드의 큰 주제는 '일상'과 '기억'입니다. '일상'은 씨베드 내용 그 자체입니다. 씨베드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일상은 거의 없고 일을 하고 여행을 가고 밥을 만들고 산책을 하고 남들과 이야기하는 일상을 과장없이 담담하고 조용하게 써내려 갑니다. 주인공 사치코의 연인 타카코와의 이야기도 이런 '일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치코와 타카코는 소꿉친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서로의 작은 일상을 채워주고 만들어주는 관계였습니다. 특히 여행은 언제나 둘이서 함께 하면서 둘이서 여러 이야기와 즐거움 그리고 기억을 나누게 됩니다. 둘이 연인이 되기까지의 다난한 과정이나 사건 그런 건 하나도 안 나옵니다. 아마 추측하기로는 이렇게 어떤 때든 일상을 함께하다가 연인이 되었겠죠.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채워진 일상의 '기억'은 씨베드 미스테리 요소의 중심이자 작은 터닝포인트 또 일상이 그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그려지는 이야기입니다. 씨베드의 주요 내용은 여느 때와 같이 연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같이 일하는 직원의 말을 계기로 그 연인이 상당히 전에 실종됬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어릴 때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나라사키랑 함께 왜 연인이 실종됬는가 왜 나는 지금까지 연인과 함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는가를 찾게 되는 겁니다.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기억은 자신의 일부이며 자신이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기억이 사라지거나 하면 그건 반드시 이유가 존재하죠. 하지만 찾는다 해도 기억을 찾기 위해 연인의 흔적을 쫓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여러 사람들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인과 함께한 평범한 기억들에 천천히 잠깁니다. 이 기억의 바다는 뜨겁거나 차갑지도 않습니다. 가끔 차가운 물에 놀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오래 머금은 미지근한 온도와 흐름에 기분좋게 몸을 맡길 뿐이죠.
씨베드는 이렇게 사치코와 사치코의 바다에 연관된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 잔잔하고 사건이랄 것도 없는 일상과 기억의 이야기일 뿐이라서 지루할지도 모릅니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다면 빨리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일상이란 건 전부 세세히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 때 주인공들이 느꼈던 기쁨, 편안, 슬픔, 놀라움...여러 감정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끼시면 됩니다. 그러다 에피7이 끝나면 화자 중 한명인 나라사키를 통해서 쌓인 의문들을 풀기 시작합니다. 이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저는 어둡고 긴 터널에 드디어 출구의 빛이 비쳐드는, 혹은 가까이 다가오는 수면 너머의 햇빛이 느껴졌습니다.
수면 밑은 사람이 계속 있을 곳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헤엄쳐서 지상으로 나와야 하죠. 주인공인 사치코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왜 연인이 사라진 기억을 잊었는가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단지 연인과의 기억이 소중하다는 것만을 알게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바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자기가 땅 위에서 살아가도 언제나 어디선가에서 파도를 치면서 함께하고 있단 걸 깨닫습니다. 바다에서 나가야 한다는 건 절대 잔혹한 현실만을 보게된다는 게 아닙니다. 바다를 나감으로 비로소 제일 소중하고 중요한 걸 알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플레이어와 사치코는 함께 석양의 빛이 비치는 이 바다를 나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듣게 되죠.
씨베드는 동인 회사의 작품이다 보니 그림이나 연출 음악 등이 특출나게 퀄리티가 좋지 않습니다. 음악은 작품과 어울려 이 이야기를 한 층 더 아름답게 칠해주지만 그림이나 연출 그리고 유아이는 어설픈 부분이 느껴집니다. 이런 부분이 너무 잔잔한 스토리와 겹쳐져 이 작품은 그리 유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스토리는 잔잔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아름다움과 감동 그리고 그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고 마음에 울리는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한 명이라도 더 보게 되기를, 그리고 엔딩을 봐서 이 파도 소리를 함께 듣기를 바라면서 작품의 리뷰를 쓰게 됬습니다.
뭔가 처음으로 되게 진지하게 리뷰를 적었네요...다시 보니 다소 스스로도 오글거리지만;; 하지만 이렇게 묘사함으로서 이 리뷰를 보는 여러분들이 제가 느낀 걸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흥미를 가지면 좋겠네요.
시험기간인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괜찮은 걸까... 언제나 그렇듯이 쓰다보니 시간이 훅 지나가버리네요 안그래도 저한테 소중한 작품이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이제 공부에 집중해야죠 11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절대 새 리뷰를 쓰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진짜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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