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작성일 2020. 9. 15. 3:31

억만년만에 해보는 오토메 게임이네요. 초등학생 때 소녀적 연애혁명 러브 레볼루션하고 고등학교 때 수상한 메신저 하고 그 뒤로는 거의 손 안 댔는데, 어느 날 미친듯이 오토메 연애가 끌리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꽤 있었던 이 게임을 한 번 사봤습니다.
일단 미리 말하자면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히로인 캐릭터들은 나름 재밌긴 했는데 각각 에피소드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감정을 풀어나가는 게 좀 퀄리티가 떨어지고 취향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근데 그래도 전 이 게임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어요. 왜냐면 6개의 개별 에피소드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실력 자체는 엄청 탁월하거든요.
※혹시나 헷갈릴까봐 미리 말하자면 전 주인공과 러브라인이 생기는 등장인물, 공략가능 등장인물을 전부 성별 관계 없이 '히로인'이라고 부릅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야하나 불평불만이 대부분이라서 주의
이야기 구성 자체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이 어두운 곳에서 헤매고 있다가 앨리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둘이 함께 수정거울 너머의 이상한 나라를 가게 됩니다. 거기서 주인공은 그 에피소드의 히로인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봐도 연애고 자시고 이전에 문제가 여러모로 심각한 히로인들을 붙들어서 정신적으로 케어를 해주고(즉 구원해주고) 사귀게 됩니다. 이걸 총 6번 반복하면서 5번째 에피소드인 백설부터는 조금씩 세계관의 진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개별 에피소드 퀄리티 자체는 미묘합니다. 재미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감정선에 문제가 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감정선이 작가가 찬찬히 생각해서 착실하게 풀지를 못하고, 어딘가 다른 서브컬쳐에 나온 좋아 보이는 감정선을 끌어다가 이어붙인 거 같아서 붕 뜬 느낌이 있습니다. 게다가 정리도 잘 하지를 못해서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곱씹고 속으로 정리하는 버릇이 있는 저는 하면서 이게...왜 이런 거지? 왜 이렇게 된 거지? 같은 감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종이조각이 서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작품 자체가 흥미로운 사건 보다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감정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까...이 감정선의 단점이 더더욱 드러났습니다. 갈등까지 전개되고 치솟던 감정선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맺어지고 결말까지 휘몰아친다기 보다는, 전부터 레퍼토리만 조금 다르지 비슷하게 반복했던 감정에다 해결을 이어 붙인 거처럼 보였습니다.
캐릭터들은 개그면에서 재밌었습니다. 사실 게임에서 재미가 가장 있었던 부분은 캐릭터들이 서로서로 떠드는 장면 아닌가 싶네요. 개그물도 아닌데 애들이 떠들면 저절로 웃게 되더라구요. 특히 앨리스는 만담가도 아니고 입을 열 때마다 짜증나는 동시에 웃겨 죽겠어요. 너 개그물에 재능이 있다.
그리고 이건 갠적인 취향인데, 저는 명확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독자에게 모든 명확한 감정선과 사건 전개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작가가 만드는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게 명확하고 잘 이어져 있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칭아리는 동화를 표방하다 보니 부분부분에 애매모호한 지점이 있다 보니 그건 안 맞았네요. 또 저는 둘의 관계성이 사건이 되고 전개가 되는 것보다, 커다란 이야기 위에서 캐릭터들이 휘말리면서 감정을 펼쳐나가는 게 더 취향이라서 개별 에피소드 구성이 잘 안 맞았습니다.
몇번이고 하차할까...여기서 그만두고 한달쯤 쉬다가 다시 할까...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플레이하면서 드디어 에피소드3에 진입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라구요. 백설에서 아리송한 떡밥을 직접적으로 뿌려주더니, 마법사편에서 지금까지의 개별 에피소드를 하나로 연결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각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존재방식, 기억에 관한 여러 이야기, 애매하게 넘어가버렸던 과거 이야기들, 다소 의미심장한 대사들...비슷하지만 서장과 앨리스 이외에는 직접적인 연결이 잘 보이지 않았던 개별 에피소드들이 저 키포인트를 이용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떡밥이 차근차근 풀리면서 아! 그게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사실 그래서 에필로그의 중후반까지는 평가가 나름 올라갔는데...올라갔는데.....올라갔는데...
이 뒤부터는 약스포가 나오니 절취선을 치겠습니다. 중요한 스포는 안 나오는데 엔딩이 약간 어떤 분위기인지는 나옵니다. 덤으로 그레텔 루트의 약스포도 살짝.
----------------------------------------------------------------------약스포주의----------------------------------------------------------------------
에필로그에서...드디어 엔딩인가! 싶던 순간에...이제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이야기가 끝이다! 싶은 순간에 애들이 갑자기 모이더라구요. 마법사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열심히 주절주절 해설해주는 거 까지는 참을 만했는데, 해피엔딩을 위해서 애들이 회의를 시작하네요. 말을 다들 너무 열심히 쏟아냅니다....시나레가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자연스럽게 END를 맺을 수 있었던 엔딩 부분에다 해피엔딩을 맺기 위해 시나레가 전개없이 설명만 너무 길게 하는데다가 사족과 사족을 붙이기 시작해서 늘어집니다....진짜 늘어집니다...같이 방에 있었던 제 동생이 옆에서 그거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제 동생은 저보다 일본어를 더 잘합니다.)
제 엔딩 미학과 너무 반대되는 엔딩이었습니다...제 엔딩 미학은 클라이맥스의 순간에는 최대한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말들만 주고 받아서 짧고 강렬하게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강렬한 여운에 휩쓸린 다음 천천히 곱씹으면서 아...이것이 이랬던 거구나...이 캐릭터들은 이런 결말을 맞은 거구나...라고 해야 하는데,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까지 너무 주절주절합니다...여운이 끊깁니다..괴롭습니다...아리스가 히로인들 전원에게 해피엔딩을 주고싶었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좀 복선을 잘 깔아놓아야 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복선이 전무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만 너무 설명하다 보니 '아 그렇구나...'라는 감상 외에는 잘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리뷰의 90%가 불평불만인 거 같은데 그래도 뼈대 자체는 무지 마음에 들어서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거 설득력 없는 거 아닌가 싶지만 믿어주세요. 작품이 안 맞았던 것과는 별개로 구성 자체는 엄청 감탄했습니다...
P.S.그레텔 에피소드 근친러버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너희들은 그런 안이한 마음으로 근친을 하는 거냐. 근친이라는 건 '가족'이라는 게 매우매우 중요하단 말이다. 가족...그것이 근친의 정체성이란 말이다...엔딩의 에필로그의 후일담의 사족의 뒷설정까지 가족이라는 걸 강조해야 한단 말이야...흑흑흑.....
P.S.여기가 그레텔 에피소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곳인가요 손님. 사실 저 그레텔 에피소드 중반부까지는 그레텔이 아리스를 누나로서 사랑하지만 누나에게 의존하는 바람에 버림받고 싶지 않고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기에, 아리스의 연애감정에 응해준다고 철떡같이 믿고 있었거든요...분명 감정선도 그랬단 말이야. 愛そうと思いました,는 사랑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랑에 응해주고 싶었다는 거잖아?! 근데 언제 너희 쌍방이었니. 나 그런 거 모른다. 납득할 수 없어. 세상은 삐뚤어진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해. 어흐흑
P.2. 아리스 유리카, 너가 세상에서 제일 미친 주인공이다. 내가 수많은 게임을 했지만 너처럼 미친 주인공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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