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작성일 2019. 9. 2. 23:28

리디북스에서 2년 전이었나 예전에 이벤트가 나왔기에 읽기 시작했던 책입니다. 처음에는 이벤트 덕분에 무료로 봤다가 이벤트 끝나고서는 처음으로 리디북스에서 로설 연재물을 사고(그 전까지는 만화만 봤습니다), 작가 트위터에서 19금으로 단행본이 나왔다기에 결국 성인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질러서 겨우 다 봤습니다.
왜 소설의 제목이 추상의 정원인지 의아했지만, 처음에는 제목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적당히 넘겼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9권쯤 가서 제목을 다시 읽어본 순간 아,하게 되더라고요. 추상의 정원은 좁게는 나딘이 만드는 향수에서부터 넓게는 지금 이 사회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추상이고, 우리는 그걸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원래모양과 다르게 다듬고 정리해서 정원으로 만듭니다. 이 정원을 만드는 일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듬는 정원의 구성물들이 원래는 이 모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잊어버리는 순간 누군가를 가두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 틀에 의해서 고통받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세기 파리에서 붉은 머리를 가지고 직접 가게를 운영하며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을 거머쥐러는 나딘, 사생아로 태어난 알랭, 동성을 사랑하는 소피와 조엘, 동경과 동시에 경멸을 받는 코르티잔으로 살아가는 미리암, 기존의 꿈꾸던 가정과 다른 형태를 짊어지게 된 애드비주...모두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기존 사회의 틀과 어울리는 사람들조차 모두 결국은 그 틀에 벗어나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기존 사회의 틀이 얼마나 상상이상으로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체감하게 됩니다.
향수 가게를 운영하는 나딘을 중심으로 그런 다양한 인물들이 부딪치고 싸우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입니다. 그냥 말을 주고받는 것부터 노골적으로 대판 싸우는 것까지 다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데다, 나딘과 그 주위 사람들의 입담이 워낙에 찰져서 별 거 아닌 내용들까지 되게 재밌습니다. 나딘이 똑똑하고 사회가 은근슬쩍 설치해놓은 함정들을 잘 아는 덕분에 뭔가 조금 느낌이 이상한 것이 나온다 싶으면, 이것도 찰지게 까내려서 설명도 재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딘이 대단해도 사회가 세워놓은 벽은 까마득히 높고 결국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되더라고요. 재밌다가도 이런 순간이 오면 보는 저조차도 뼈져리게 아플 정도로 슬픕니다. 그래도 주위의 사람들이 응원하고 도와주고 힘든 순간에 손을 잡아주는 걸 보고 아, 그래도 길은 있구나하고 느끼고 다시 정신 차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이고 지켜보면서 내내 전개와 등장인물의 말에 따라 흑흑 다 망했어->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를 마음 속으로 계속 반복했는데, 새삼 자각하고보니 약간 창피하네요 내가 너무 팔랑귀 같아.
이런 내용인만큼 당연하게 여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다루는데, 어렸을 때부터 사회가 현실을 알려주는 반면 이게 진짜다 같은 식으로 보여주는 이상들 간의 모순 때문에, 이건 왜 이런거지? 이게 말이 돼는건가?라고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에 대해서 깔끔하고 속시원하게 설명해줍니다. 그 덕분에 내가 느끼던 의문이 이상한 게 아니였구나 틀린 게 아니였구나하고 느끼면서 읽는 내내 되게 위로받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 모순에 헷갈리면서 계속 짊어지던 많은 고민들도 덜게 되면서, 사회는 아직까지 바뀐 게 크게 없을지언정 적어도 저 자신은 그 부분에 대해서 꽤 가벼워졌습니다.
경영이나 성장물 말고도 로맨스로도 이 작품은 좋다를 넘어서 진짜 훌륭합니다. 어렸을 때 함께 가족처럼 지내던 나딘과 알랭이 다시 만나고 어른이 된 둘이 서로에게 점점 연정을 갖게 되는 과정도 좋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입니다. 연인 관계가 되더라도 서로 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바는 다르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면서 갈등이 일어나고 싸우기도 하고 자신이 잘못한 점을 발견하고, 그런 당연한 과정인데도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하고...기존 사회가 만들어낸 틀대로 관계를 쌓는 게 아니라 나딘과 알랭이 자신이 자신으로서 있으면서 둘 다에게 맞는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하고, 관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이런 과정이 둘의 관계를 진실로 긴밀하게 엮이게 합니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쌓아낸 관계다 보니까 서로가 손을 맞잡고 별 거 아닌 게 가볍게 스킨쉽해서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달콤할 뿐만 아니라 가슴 끝까지 절절히 그 순간 순간의 감정이 느껴지더라구요.
뭔가 로맨스에 당연하게 있는 것들만 적어놓은 것 같은데!...하여간 좋아요 진짜 좋아요 헤테로 로맨스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발 읽어주세요 지금까지 읽어온 헤테로 로맨스에서 세 손가락에 꼽힙니다! 진짜로
아직 전부 이해한 것이 아니라서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게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전부 이해 못한 게 아니라 13권이 양도 양이지만 이 안에 담긴 이야기의 밀도가 엄청납니다. 리뷰에서 이야기 하는 건 많은 것을 생략했고 엄청 간략화 한 거예요. 이것 이상으로 이야기들이 엄청 많습니다.
리디에서는 이벤트를 자주 합니다. 십오야라던가 썸딜이라던가 이 외에도 기타 등등...한마디로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는 꽤 많다는 거죠. 그러니 리디북스 사용하고 있는 분들 로맨스에서 추상의 정원 사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정말 적어도 후회는 안합니다. 이렇게 좋은 책인데.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 별로일 수도...있지만 좋은 건 취향이 아니더라도 좋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한 번 2권 아니 1권 끝까지라도 읽어보세요(갠적으로 1권 초반은 조금 미묘해서 진짜 중반까지는 반드시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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