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게시판/애니메이션

10년만에 돌아온 지브리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감상

에리나333 2025. 10. 22. 19:49

네이버 블로그 작성일 2023. 7. 15. 5:18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지브리가 어떠한 홍보도 하지 않고 그저 포스터 한 장과 7월 14일날 개봉한다는 정보만 정하고 정말 그 날 개봉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한가득 들어간 리뷰입니다.

만약 아직 이 영화의 내용을 모르신다면 감독의 의도, 그리고 저의 의도에 따라 돌아가서 그대로 이 작품을 감상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당신도 느낀 것을 이야기해준다면 고맙겠습니다.

지금 막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감상이 휘발되기 전에 급하게 쓰고 올리는 리뷰입니다. 두서없고 내용이 뜬금없이 튀고 제 욕심에 그걸 정리하지 않고 지금 바로 서둘러 올리지만 이 감상을 감상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스포일러가 가득한 리뷰입니다.

일단 지금 감상이 휘발되기 전에 적는 건데 아주 단순한 영화 보기 전 감상도 아닌 일상이야기부터 적습니다. 처음에는 블로그 리뷰로 쓸 줄 몰라서 막 쓰는 바람에, 지금 고쳤 봤지만 혹시나 흔적이 남아서 보는데 지장을 드린다면 죄송합니다.

 

일단 나는 지브리를 그렇게까지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미리 밝힌다. 아니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름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지브리 애니는 아니긴 하지만 나우시카 원작도 되게 감명깊게 읽었다. 하지만 신작이 상영한다고 상영하는 그날 밤 왕복 2시간 거리를 걸어서 10시에 보고 12시에 나갈 수준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sns에서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상 다 포기한 모습과 10년만의 신작 그리고 절대로 홍보하지 않는 모습. 이건 스포일러 당하기 전에 보러 가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 상영하는 당일날 학교 다 끝나고 밤에 보러 갔다.

일단 영화관 들어가기 전에 트위터나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너어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브리 영화는 9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너어어무 많아서 아니 어느 수준이냐면 난 서울의 중심 영화관도 가보고 부산의 큰 영화관도 가보고 온갖 영화관을 가봤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인 수준이었던 거 같았었다. 나는 'ㅎㅎㅎ.......다른 영화도 개봉해서 보러 가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려 애썼는데 영화관 방들 복도에서 트위터하니 다들 지브리 하는 데로 들어가더라 미야자키 하야오..........홍보 1도 안해도 이렇게 사람 모을 수 있는 거 정말정말 대단하다. 대단한 감독이다. 다른 사람들 증언으로도 그냥 영화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전부 지브리 보러 온 사람이라고들 하더라.

작품은 정말정말정말 난해하다. 어느수준이냐면 이쿠하라하고 비빌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함 작품이다. 사실 끝나고 관객들 얼굴 보니까 대부분이 ??? 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나도 전부는 이해못했닼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크레딧이 흘러나오는 순간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물이 흘러넘쳤다. 진짜 코까지 흘릴 정도로 울고 또 울고 작품을 보고 이 정도로 우는 건 처음이었다. 내용이 너무 슬퍼서도 아니었다. 그저 이 감독 앞에서 우는 기분이었다. 울면서 나가다가 급하게 영화를 더 빨리 다 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영화와 내가 느꼈고 후회하는 바를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틀렸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아 지브리가 다시 세상 비판하는 영화를 만드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이상으로 내용이 바로 파악하기가 어렵고 메타포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생각했는데...보면볼수록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메타포에 대해서 생각한 흐름 물=원초로 돌아가는 것, 이 세상에서 무언가 탐내고 발악하기를 포기하는 것>이게 물고기라고 생각한다. 새=처음에는 뭔가 인도자 전쟁 전으로 복귀시키려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포식자, 특히 탐내는 걸 포기한 존재를 먹는 중간존재라고 생각이 든다. 불=이건 그 처음 공습때문에 전쟁이나 피해의 상징인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술 그 자체, 많은 신화도 그렇고 사람들도 문명의 시작은 불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불이 기술 그 자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용 처음은 조금 메타포가 많은 평범한 지브리 영화 정도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전쟁으로 주인공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어머니 동생과 재혼하면서 군수산업으로 돈을 벌고 집안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욕심쟁이같고 거기에 주인공은 경멸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학교에 과시하듯이 차로 데려가주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학생들은 그런 주인공을 경멸한다. 그리고 또 주인공은 경멸한다. 전쟁으로 아내를 잃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전쟁산업을 계속하며 똑같이 생긴 새엄마(엄마의 동생)과 결혼한 아버지, 사람들은 전쟁으로 피폐한데 아버지가 들고온 새기호품에 아무렇지 않게 달려들며 기뻐하고 탐내는 할머니들, 그리고 새.

새와 불로 불타는 어머니의 꿈이 현실적인 시작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추상적인 메타포인데 점점 주인공이 그 새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그리고 새어머니가 그 새를 향해 화살을 쏘고 새어머니가 그들에게 아마도 납치 or 스스로를 바친 걸 보고 구해주려 가는 걸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완전히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애초에 미야자키가 이걸 미리 말한 거 아닐까

'이 탑은 완전히 추상적 세계이니 여기부터는 추상적 이야기만 나옵니다.'

탑에서는 여러가지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새의 가죽을 쓴 이상한 사람, 욕심쟁이 할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당찬 여성. 불을 다뤄서 다시 태어나는 영혼을 먹으려는 펠리칸을 공격하는 불공주. 사람을 먹으려는 앵무새들. 그리고 그들의 왕. 그리고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할아버지.

여기서 주인공이 모험을 하고 여러가지 환상...이라고 해야하나 추상이 가득한 세상을 마주하면서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된다. 할머니들이 욕심쟁이인 건 맞지만 그래도 그들의 노력이 있기에 지금의 자기 생활이 유지되고 자기는 할머니들이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 새의 가죽을 쓴 이상한 인간은 의외로 주인공을 열심히 돕는다는 점. 자기가 적대하던 새들도 그저 살고 싶어서 다시 환생하려는 아이들의 영혼을 먹으려고 한 점. 이걸 보는 나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프롤로그에서 보여줬던 그들의 모습을 추상의 세계에서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됨. 왜 추상의 세계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냐 그건...사람의 숨겨진 면모란 그리 정확한 게 아니니까. 우리들은 영원히 모든 면모를 전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난해한 상징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세계의 뒷면을 볼 수 있던 거라고 난 생각한다.

 

난해한 상징들은 줄곧 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새어머니의 존재였다. 그래도...최대한 이해한 걸 풀어보자면 아마 새어머니 또한 고대의 무기인 활을 가지고 새를 공격한다는 게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이런 세상을 경멸하고 있었다는 뜻인 거 같다. 그리고 언니를 포함해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새 아이를 품고 있는 점에서 오히려 절망하고 그 절망에 의해서 자기 스스로를 세상에 바치려고 한 거 아닐까. 근데 이건 좀 낡은 생각이긴 한데 역설적으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또 새생명을 품은 사람이 절망하고 그냥 희생하려는 시점에서 이 세상은 끝을 마주한 거 같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건 구체적으로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새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사방팔방 추상의 세계를 모험한다. 여기서부터 불이라는 것에 본격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어떻나면, 이 세상에서는 불이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밥을 먹고 살아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새들을 공격하고 쫓아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당찬 여성분이 불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펠리칸들을 상처입히지 않고 주인공을 보호했고 몇 안되는 물고기를 커다란 걸 하나 잡아 그 배를 갈라 밥을 작은 영혼들에게 먹이고(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미야자키가 다시 미니미들로 상업을 하려고 하나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주인공에게 배를 가르는 법도 가르쳐준다. 그 과정에서 내장이 엄청나게 튀어나왔는데 제대로 조리해서 먹는 과정에서 얼마나 물고기(탐욕하기를 포기한 자들)그 안에 생명이 가득한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과 새의 입장에서 물고기가 멍청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먹은 작은 영혼들이 드디어 날아서 환생을 하러 가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갑자기 펠리칸이 그 영혼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만두라고 하는 순간 불공주가 나타나서 불을 날려 펠리칸을 쫓아내지만 거기에 같이 불태워진 작은 영혼들도 분명히 존재해버렸다. 분명 불은 영혼들을 지켜줬지만 동시에 불태우기도 하고 펠리칸들도 죽여버린다. 그리고 다시 상기해야 한다. 이 불이 작품에서 가장 처음 죽인 건 어머니=불공주였다는 걸. 그 죽기 직전의 펠리칸이 주인공에게 자기 종족들은 그저 살고싶어서 먹었다고 고백을 하는 걸 보니 그 세상은 그냥 현실 그 자체인 거 같았다. 물과 하늘 사이에 사는 펠리칸들은 약자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악의같은 게 그렇게 짙은 게 아니다. 짙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세상은 그저 펠리칸은 물고기를 먹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기 위해서 먹고 있던 거 뿐이고 물고기조차 없자 작은 영혼들을 잡아먹는 죄를 범해 불공주로 인해 불태워지지만 그것도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다. 이 새들은 평범한 사람을 상징한다고 지금 들어서 생각한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기에(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자기들은 그저 새 한마리라서 약자들을 착취한 결과물을 그대로 먹고 그 구조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 불공주는 작은 영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불로 그들의 죄를 벌했고 그게 죄가 맞지만 살려고 했던 건 죄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쌓아올린 문명은 그들을 때때로 벌했고 그게 틀렸다기에는 애매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건 뭐가 문제일까 라고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간부터 할아버지가 어느날 책 속에서 사라졌다는 돌로 만들어진 건물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청난 불과 함께 온 그것은 아마 일정이상으로 달한 문명 그 자체…정확히는 근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지식의 상징인 책이 가득한 곳이지만 동시에 거기에 건물을 짓다가 노동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죽어버린 곳이기도 하다. 산업시대의 빠른 지식의 발달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죽음을 은유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생각이 든다. 이 할아버지의 건물을 짓던 시대도 딱 그런 시대였다. 할아버지는 거기서 틀어박혀서 계속계속 지식의 산물인 책을 읽다가 그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 되버린다. 세상을 이루는 하얀 돌들을 쌓아올려 위태위태한 탑을 만들어 세상을 유지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주인공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일을 맡기를 원했지만 주인공은 그걸 거절하는데…다름아니라 이 신이라는 위치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지식만 쌓아온 할아버지는 분명 수많은 지식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통달해 신이 될 수 있었지만, 이 세상을 그저 하얀 돌로 이루어진 위태한 탑으로만 볼 수 있게 됐다. 주인공과 다르게 이 추상의 세계에서 존재 하나하나들의 이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사실을 아는 주인공이 이 일을 맡아주기를 도리어 원했지만 끝끝내 주인공은 거부한다. 분명 세상을 이 하얀 조각으로 보고 탑을 쌓으면 세상을 유복하게 만들거나 균형을 유지해 평화를 만드는 건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굶지않기 위해 작은 영혼을 잡아먹는 펠리칸들이나 늙어서 욕심쟁이가 됐지만 옛날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일로 힘냈던 멋진 할머니의 젊은 시절이나, 자기 자리에서 최대한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절망한 새어머니의 존재나, 지키기 위해 불을 휘둘렀지만 그 탓에 작은 영혼까지 죽인 불공주=어머니의 존재, 새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욕심쟁이지만 주인공을 계속 도와주었던...끝내 완전히 새로 변한 심술쟁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자기들에게 주어진 삶들을 최대한 열심히 살았다. 그걸 보지 못한 채 사람이라서 절대 가질 수 없는 신의 시선으로, 그저 세상을 하얀 조각으로 유지하는 곳은 결국 전쟁이 일어나는 지금의 세상처럼 악의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앵무새들의 왕=하늘 즉 상류층들의 왕(그도 최선을 다하긴 함. 옳은 건 아니었겠지만.) 때문에 세상의 균형은 무너지고 주인공과 새어머니 그리고 욕심쟁이 새는 지금의 세계로 돌아가고 어머니인 불공주는 자기의 시대로 돌아간다. 왜 자신이 죽어버리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냐면 답은 간단하다. 그게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사람이 지금 하고있는 행동이 그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순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건 최선을 다한 그 순간은 영원이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을 어쩔 수 없이 가진 우리들에게나 아 그걸 그때 이렇게 했으면 피했을 건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의 최선은 최선이기에 어쩔 수 없이 영원하다. 내가 최근에 소녀혁명 우테나를 너무나 감명깊게 봤기 때문에 갑자기 죽음과 영원으로 이야기가 빠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리 머리를 숙여본다...죄송합니다...하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느끼는 영원…즉 영원한 생명이나 끝나지 않는 무언가를 바랄 테지만 그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시간을 구분하는 우리이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가능한 것을 원할 뿐, 우리들이 무언가 최선을 한 순간은 지구가 멸망하든 우주가 멸망하든 차원이 멸망하든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거다. 비록 인간이 원하는 영원은 아니겠지만.

갑자기 다른 주제로 빠져서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제가 말하고 있는 게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일단 느낀 걸 말하고 있는 거에 불과함. 내가 아직 공부가 얕아서 이 안개 같은 생각을 더 잘 볼 수가 없다. 그 사실에 내가 더 슬프네요. 어흐흑. 이 뒤의 이어지는 감상도 그럴겁니다.

현재로 돌아간 주인공은 막 기적같이 전쟁을 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전쟁은 분명 엄청난 일일텐데 그냥 페이드 아웃 하나로 넘어가고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났다와 함께 그저 교토로 돌아가는 주인공을 보고 결말이 날 뿐이다. 처음에는 너무 허무한 결말 아니야?!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거였다. 결국 그 시대의 최선을 다한 사람들과 기술로 세상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주인공은 이제부터 공습으로 어머니를 잃은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세상을 세워야 함.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고, 동시에 아주 작고 작은 자기 한 사람의 힘으로 친구를 모으고 생각이 맞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또 현재의 자신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첫문단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아 내용 괜찮았는데 이해하기 어려웠고 결말이 약간 허무하다~'라고 생각하면서 크레딧을 보다가 펑펑 울기 시작해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내용이 슬펐던 건 아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멋진 작품은 맞다.

울어버렸던 이유는 그저, 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이 그렇게 염세적으로 변했지만 결국에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는 바가 나의 안이한 생각을 단단히 혼내주었기 때문이었다…언제나 사람들을 보고 안이하다고 말하는 게 나의 입버릇이지만, 나또한 안이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내 인생을 주절주절 이야기 해야 하는데, 나는 공감력이 뛰어나서 언제나 세상에 심하게 절망해 있는 상태다. 세상 여기저기에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생명은 그 자체로 저주고 지구가 박살나서 단세포는 물론이고 미트콘드리아 하나마저 사라져 이 고통이 사라지는 게 세상의 최선이지만 그러지 못하니까 결국 세상을 그나마 살기 편한 곳으로 조금씩이라도 바꿔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차악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대학의 사회학과의 복지전공을 골랐다. 그리고 현재 복지사자격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웃기겠지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옳은 생각은 아니라는 걸 어느정도 자각하고, 소설을 쓰면서 그걸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내 생각의 근본은 맞다. 그리고 나는 이 <너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뭐라고, 내가 무슨 존재라고 남의 세상을 그냥 박살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가, 생명의 순환을 저주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내 세상도 다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의 최선을 다한 세상은 아주 당연하게 조금의 조금밖에 모르는데. 나는 남의 절망을 너무 수집한 나머지 그냥 사람들을 절망의 한 조각으로 보고 이 탑을 그냥 전부 불태우고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해버렸다.

죽음도 고통도 모두에게 의미가 다를 건데, 그걸로 세상에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완전히 단정짓는 것 또한 나의 쪼끔 이상하고 쪼끔 멘헤라인 내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도 세상이 존속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들이 아는 인류가 계속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해야할 일은 과거의 선조들과 생물들이 남긴 최악의 최선과 최고의 최선 그리고 평범한 최선들을 보고 배우고 그러므로써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아주 느리고 느리더라도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마주하고 판단하면서 내 세상을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넓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내가 다한 최선으로 미래에 혹시 있을 사람이 조금이라도 세상의 진리에 가까이 간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겠지. 물론 나도 지금 이 삶에서 세상의 진리 즉 모든 존재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거고 내 또다른 일본 현지의 한국인 트친의 감상을 보고 느꼈던 것을 적겠습니다. Feat 코게코

.

그 탑의 조각의 개수의 의미와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상징을 깨닫게 된 건 트친의 감상덕분이었다. 미야자키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다. 세상의 많은 것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고 자기의 창작으로 세상의 고통을 바꾸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시선으로는 세상은 여전히 반복하면 안될 것을 반복하고 있고 그게 너무 대단히 실망스러워서 동네 쓰레기 줍는 할아버지를 고집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버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그 시간이 분명 미야자키에게는 잠시 생각을, 세상이 아닌 한사람한사람과 자신을 마주할 시간을 줬을 거라고 멋대로 예측해 본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최선을 보는 게 아니라 그저 한 조각 한 덩어리로 보고 있었을 뿐이구나, 를 느끼고 그 존재로서 이미 이 시대에서 할아버지가 된 자신을 자기가 창작한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할아버지로 등장시켰다. 이걸 볼 젊은 사람과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상정해서 자기의 이런 생각들은 틀렸다고 전해줬던 거 아닐까. 그리고 이 이야기가 아주 결정적인 걸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가지고 나왔던 조각이 아주 잠시 주인공이 그 추상적인 세상에서 겪은 일을 기억하게 만들거고, 결국 그 기억은 곧 잊을 거라고 그 펠리컨 동료의 입을 빌려서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어떠냐. 원래 인간은 망각하는 생물이다. 망각하기에 끝없이 배우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래서 영원할 건데, 그 영원이 쌓여서 또 다른 현재를 만들 것인데, 자기 작품이 그런 존재가 되어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거라고 그것또한 지금 나의 최선이고 이걸 봤을 사람들의 최선이라고 말해줬던 거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12개의 하얀 조각=12개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더 자세히 말하기 위해서 함부로 트친의 감상을 인용하자면(죄송합니다)

[늙고 힘에 부치는 큰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인 마히토에게 뒤를 이어달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13개의 돌을 사흘에 한 번씩 쌓으라"는 것이었는데, 미야자키가 감독을 맡은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이 (루팡 3세 극장판 포함) 12작품이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가 1984년 작품이니... 이 대목을 통해서 큰할아버지가 지금까지의 미야자키 자신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세계가 하루를 더 버틸 수 있다는 대사도 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마히토는 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13번째 돌을 놓기를 거부하고, 비록 악의가 넘치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더라도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를 선택합니다.]

[결국 하고자 하는 얘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자라서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 이야기 속 세계들이 더이상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더라도, 더러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동심을 가지고 보았을 때의 악의가 없는 마음을 간직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지막 부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설교를 하면서 가르치려고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죽고 잊혀지더라도 이것 하나만 기억해다오" 라고 하는 부탁에 가까운 그런...]

트친의 이 감상을 보고 아 이렇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미야자키 할아버지에게 혼난 게 아니였다.

세…계…멸…망…같은 중2병멘헤라 사고를 이 나이에 가지고 있던 내 가슴 중앙에 미야자키의 말이 너무 팍팍팍 꽂혀서 어허엉 미야자키 할아버지에게 혼났어 하고 울었던 거지. 미야자키는 오히려 잘 부탁한다고 지금 세대에 다정하게 말하고 있는 것 뿐인 것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 83세라고 들었다. 정말 할아버지인 이 감독이 지금도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니 너무너무너무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대는 거장이다. 당신이 죽더라도 당신의 작품은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혹시나 가능하다면 한 작품만 더 만들어달라 하고 싶지만, 이게 당신이라는 감독의 마지막 인사이자 커튼콜 같았다. 이 작품을 만들어줘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또 이 자리를 빌어서 좋은 감상을 남겨주신 트친에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별 쓸데가리 없는 에필로그~(뜬금없지만 사진에 수성의 마녀 2기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음)

돌아가는 길에 트친 감상을 보고 흐흑 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지 흐흑 하고 원래 편의점에서 나중에 상품을 공짜로 덤을 주는 플라이치라는 걸 이용하려고 세븐일레븐에 들렀는데…나는 하루 당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어 세상 물자의 낭비와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해 소비하지 않도록 하지 훗. 하고 다시 나가서 트위터를 하면서 현지 사람 특권 <스포일러 하는 척 안 하기>를 트위터와 미스키 둘 다에 남발하고 에스엔에스를 보다가

다시 세븐일레븐에 들어감

저기요 3천엔 동전으로 바꿔 줄 수 있을까요? 프린터기 사용하고 싶어서요.

아 감사합니다

드르륵…드르륵…드르륵…드르륵…드르륵…

더..뽑을까? 나 이 장면도 가지고 싶어…

미친놈아 2100엔으로 7장 뽑았으면 충분히 뽑았다 남은 돈은 제발 기부해.

아,알았어.

….

당분간은 더 절약하고 아끼면서 살자…

이게 메타적으로도 작품을 완성한다는 걸까. 나는 울면서 영화관에 나왔고 돌아가는 길에 훗 낭비를 하지 말도록 하지 해놓고 돌아가는 길에 내 지금의 최애오시컾의 포스트카드를 뽑는다고 2100엔을 사용했다. 비록 매우매우 만족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하지만 뭐 괜찮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내가 그 순간에 느꼈던 것, 앞으로는 더 노력하겠다고 마음 먹은 그 순간은 영원할 테니까. 그런 사소한 영원들이 쌓여서 현재를 만드는 거니까.

그,그리고 당분간은 더 절약해서 살 거니까.

진짜로 진짜

이딴 에필로그 줘서 죄송합니다 두서없고 말투도 계속 바뀌고 어지러운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신 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그리고 내가 언젠가 생각이 정리됬을 때 이 리뷰를 한 번 더 정리하기를 바라며

2023년 7월 15일의 새벽 4시 17분의 영원할 순간의 에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