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저명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한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최근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이러한 시도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최근'에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해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쿠니 프로듀스로 기존의 문학을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다른 사람들과 각본을 연출을 짜서 만드는 낭독극이었다.
당시에는 낭독극이 어떠한 것인지도 낯설었고 여성 주역과 남성 주역 각각 한 명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인데 두 명 다 남성 성우를 사용한다는 것에 반감도 조금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 제2탄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지옥변으로 만든 [사랑의 지옥변] 낭독극을 한다고 발표했다. 1탄이 낭독극 할 때 평가도 좋았다고 하고 지옥변은 일본 근대 문학 중에서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데다 포스터의 두 명의 여성을 볼 때 부녀의 이야기를 모녀로 바꾼 듯한 예감이 들어서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낭독극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일본어 수준인가 과연 그만큼의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나 감각을 줄 것인가 감이 안 잡혔다. 그러던 와중 1탄 낭독극을 배신했던 걸 재배신한다는 걸 듣고 가격에 약간 갈등하다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질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낭독극이란 걸 처음으로 듣는데 낭독극이라는 게 이렇게 에너지와 감정이 흘러넘치는 창작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기도 했다.
이 낭독극 제목 [슌킨의 사스케]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왜냐면 이 낭독극은 일본 근대 문학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 낭독극이 발표됬을 때 원문으로 읽어보려 했지만 너무 어려운 일본어 난이도에 좌절하고 빌린 지 10분만에 반납을 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원작이 어떤지 모르고 [슌킨의 사스케]와 [슌킨 이야기]가 얼마나 다른 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 지 전혀 모른다. 그래서 이 감상글에서 하는 이야기는 철저히 이쿠니 프로듀스가 한 낭독극 [슌킨의 사스케]에 대한 감상이다. 그리고 낭독극이다 보니 감상을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말할 수 밖에 없어서 스포일러를 말할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스포일러를 주의해주길 바란다. 결말까지 다 이야기한다.
두 개의 무덤이 강을 향해 나 있다 하는 이 순간의 청자에게 알 수 없는 말들이 읊어지고 난 뒤, 슌킨의 사스케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사스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많은 일본 근대 문학에서 그러하다 싶이 마음에 어쩌면 일생 채워지지 않을 허무한 공허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특별할 구석이 별로 없다고 하는 사스케는 하인으로 일하게 지내면서 자기보다 4살 어린 맹인의 샤미센 연주자인 아가씨 슌킨을 만나게 된다. 그 슌킨은 4살이나 어리면서 아주 당당히 그러면서 단호하게 사스케를 향해 성질을 불같이 부리면서 샤미센의 연주에 집요한 인물이다.
이야기 전체는 그렇게 복잡할 구석이 없다. 이렇다 할 주역은 슌킨과 사스케 두 명 뿐이고, 예상하다싶이 사스케는 만나게 되는 슌킨이라는 특별한 인물은 '자신의 공허'를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여 특별한 방식으로 만족시켜주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렇게 만난 슌킨과 사스케 이 두 명은 똑같이 마음의 공허를 껴안고 살고 서로 만나지만 그 공허의 벡터가 완전히 다르다.
사스케는 담담하게 읊조리는 독백과 아무런 특별한 부분이 없다고 자신을 표현하는 걸 봐서 알겠지만 사스케는 공허가 자신의 일부 그 자체로 그 모습이 사스케 본인에게 있어 걸리지언정 자연스러운 인물이다. 만약 슌킨을 만나지 않았지만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생을 보내고 난 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스케 자신도 이 공허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슌킨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그냥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슌킨은 반대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공허나 다름없는 것 위에 성립되어 있고 자신마저도 껍데기를 벗기고나면 공허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받는 것은 자신이 태어날때부터 갖고 태어난 아름다운 외모때문이다, 하지만 이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라는 존재는 부서지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맹인이 되고 난 후에는 그 외모라는 것은 더더욱 전적으로 타자의 시선에 맡겨지니 슌킨은 더이상 예쁘고 예쁜만큼 예쁨받는 아가씨가 아닌, 자신의 공허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이고 강하게 소리치며 아마 자연스럽게 무너지거나 훅하고 촛불같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 아닌 샤미센의 '소리'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미 공허의 일부인 사람과 그 공허에 버티며 살아가는 두 사람은 사실상 대극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구도는 사스케가 슌킨에게 영향을 받는 구도가 된다. 슌킨의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칼날같은 태도는 사스케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오히려 그 상처가 사스케에게 있어 살아있다는 감각이 되고 색없는 세상에 색을 덧입어준다. 그리고 슌킨의 영향으로 사스케또한 샤미센을 연주하게 되면서 어쩌다가 둘은 말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지만 슌킨의 샤미센의 음에 대한 집착때문에 생기는 벼리지 않은 칼날같은 감정의 배출구로서 사스케가 슌킨에게 지도라는 명목의 폭력을 받는 관계가 된다.
여기까지 오면 슌킨또한 사스케에게 무언가를 느끼지 않을까 싶겠지만 오히려 슌킨은 사소한 일상에 있어서 '사스케'라는 존재를 느껴버리고 그걸 심히 거슬려한다. 게다가 이렇게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스케는 슌킨의 옆에 있다는 느낌을 슌킨은 받지 못한다.그래서 슌킨은 사스케에게 너는 도구고 의지를 갖으면 안되고 말을 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한 문장에 정리해도 꽤 임팩트가 있는데 낭독극에서는 슌킨의 반복되는 말에 매번 알겠습니다 라는 사스케의 말이 정말 무한히 반복되지 않을 만큼 반복된다. 그 전부터 성우들의 낭독극의 연기에서 그 연기력의 대단함을 느꼈지만 이 부분에서는 슌킨과 사스케의 그 기묘한 관계에 대해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각에 아예 삼켜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한 말은 정말 질리듯이 듣고 있다보면 어느순간 끝나고 슌킨이 독립한 뒤로 시간은 옮겨간다. 슌킨과 사스케는 그 뒤로도 계속 함께하며 슌킨의 샤미센 연주자이자 선생님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사스케는 조용히 옆에서 계속 함께 한다. 이런 여자와 남자의 관계라면 상상하기 쉬운 육체적인 관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슌킨이 사스케를 도구로서 삼는 순간부터 계속 슌킨은 사스케에게 있어 인간이 아니라 도구로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게 슌킨도 사스케도 신기하리만큼 심적으로 평안한 나날을 함께 보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슌킨의 얼굴에 열탕을 부어 슌킨의 얼굴 절반에 평생 가시지 않을 화상의 흔적을 남긴다. 슌킨은 자신의 외모가 타인에 의해 부서지고 마음의 평안 중 하나였던 기르고 있던 작은 새의 죽음에 완전히 심적으로 무너져 공허에 사로잡혀 간다. 그리고 그 때 사스케가 취한 행동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는 것이었다. 거친 호흡을 내쉬며 몇 번이나 한다고 반복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하며 끝내 가위로 자신의 눈을 찌른 사스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만 그러자마자 자신의 스승인 슌킨에게 달려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렸다며 스승님과 같은 암흑에 있다면서 동시에 자신은 스승님의 그 아름다운 외모만을 영원히 자신 안에 간직할 수 있다 한다.
이 때 이 둘은 초반에 공허의 파도 안에서 서로를 불렀을 때처럼 서로를 다시 부른다. 아니 금방 포기했던 첫번째와 다르게 슌킨은 계속 사스케에게 자신에게 당장 와라며 소리치고 사스케는 슌킨보고 어디 계시냐고 울부짖듯 소리친다. 계속 둘은 서로를 찾지만 하지만 둘은 영영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사스케는 슌킨의 도구이다. 이 공허 안에서 인간으로서 서 있는 슌킨의 옆에 사스케는 함께 있을 수 없다.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의 공허를 공유할 수 없다. 서로의 목소리만 닿을 뿐 서로를 진정히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건 둘에게 비극이 된 게 아니다. 슌킨은 사스케 안에서 슌킨이 원하던 슌킨으로서 변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기에 원하던 '영원'을 손에 넣었다. 사스케는 슌킨이 그토록 지키고 무너지지 않게 버티고자 했던 '슌킨이 원했던 슌킨'을 그 존재를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공허을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서두로 돌아온다. 강 앞의 무덤 두 개. 하나는 여자의 화려한 무덤. 그리고 하나는 남자의 소박한 무덤. 둘은 같은 방향으로 강을 쳐다보며 묻혀있다. 같은 무덤이 아닌 각각의, 화려한 무덤과 소박한 무덤으로서 그 둘은 인간의 생명을 넘어 정말 영원히 함께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제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슌킨의 사스케] 처음에는 정말 단순한 제목이다, 라고 느꼈지만 이 다시 돌아오는 서두를 들으면 이 제목이 정말 이야기의 정수를 모두 축약한 단 한 문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스케는 '슌킨의 사스케'로서만 존재하고 슌킨은 '슌킨의 사스케'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마지막의 늙은 목소리로 슌킨과 사스케가 한때 젊을 때 한 문답인 '너는 도구다' '네' '의지를 갖지 마라' '네' '말을 하지 마라' '네'를 또다시 반복한다. 하지만 그 반복은 이윽고 점점 젊을 때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둘의 이 문답, '슌킨의 사스케'가 탄생하는 순간이 둘이 죽음을 맞이한 그 전후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며 이어져 왔단 걸 각인시키며 극은 막을 내린다.
사실 나는 작품의 성우에 있어서 큰 관심이 없다. 분명히 작품의 일부일 터인데 그들의 존재를 그렇게 깊이 느껴본 적이 없다. 어디 작품에 누구누구의 성우가 누구다! 하는 것은 영업할 때의 포인트지 내가 주목하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낭독극은 낭독극 자체가 성우가 없으면 아예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성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표현력이 칠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정말 나를 크게 강타했다.
[슌킨의 사스케]는 슌킨에 호리에 슌 사스케에 이토 켄토가 연기한 시로후지조(시로후지가 무슨 꽃 이름같은데 검색해도 한국어명이 안 나온다.) 슌킨에 무라세 아유무 사스케에 코바야시 치아키가 연기한 모란조 그리고 두 개의 조 둘 다에도 등장해서 엑스트라와 슌킨도 사스케도 아닌 화자나 나레이션을 연기하는 사이토 키미코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시로후지조의 극을 들었다.
이토 켄토는 아무 특징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슌킨의 사스케'를 정말 잘 표현했다. 너무 비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딘가 특징이 잡히는 게 없는 목소리가 이 사스케라는 인물을 너무 잘 표현했다. 사스케를 표현할 때 너무 한 명의 인물을 부각시키고자 했다면 오히려 사스케라는 존재는 부각됬을지는 몰라도 '슌킨의 사스케'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에 분명히 남는 목소리와 사스케의 일생이 오히려 이 작품을 든든하게 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라는 걸 느끼게 한다.
호리에 슌은 사실 임팩트 그 자체다. 너무 인상깊다. 대사 하나하나가 귀에 깊게 박힌다. 어둠과 불안을 넘어 고통이 된 것들 안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하고자 한 순간도 용납하지 않고 잘 벼린 칼날 같이 자신을 휘두르며 살아간 슌킨을 너무 잘 표현하셨다. 슌킨의 목소리는 단순히 고압적인 아가씨의 목소리가 아니라 쉽게는 부러지지 않는 날카로운 의지와 동시에 언제나 공허에 휩쓸리고 있는 흔들리는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치지 않게 잘 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남성우라는 것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흔히 여자 목소리라고 불리는 다소 음이 높은 목소리를 아예 안 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인상으로는 '슌킨'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철저하게 집중하며 듣는 사람에게 있어 이것이 '슌킨'의 목소리라고 완전히 납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두 기둥을 잘 받치고 있는 토대가 있다. 슌킨의 사스케 라는 이야기는 슌킨과 사스케의 이야기이기에 둘의 이야기에서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이 둘의 이야기를 하는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슌킨도 사스케도 아닌 사람과 화자를 연기하는 사이토 키미코다. 다양한 역을 짧게짧게 하기에 슌킨과 사스케의 목소리처럼 갈고닦은 맛이 아닌 오히려 발화하는 순간 듣는 사람의 귀에 띄기 위해 그 당시의 역할을 너무나 선명하게 딱딱 해주며 이 이야기를 이상한 두 사람의 이야기 아닌 '슌킨의 사스케'라는 이야기로서 정리해준다. 슌킨과 사스케에 비해 연극적인 톤인데 오히려 그것이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앞으로 이어지거나 그 뒤가 있는 게 아닌 이미 끝난 이야기기이자 누구도 침범할 여지가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슌킨의 사스케는 슌킨과 사스케가 만들어내는 일생이지만 이걸 이야기로서 정리하며 하나의 극이자 마무리를 만들어내는 건 이 목소리의 역할이었다.
일본어 난이도는...모른다...나는 잘 들었지만 난이도 파악은 잘 모르겠다. 애니메이션 등을 볼 때 자막이 없어도 되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배경이 옛날인 만큼 옛날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이야기 전후파악으로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슌킨의 사스케 너무 좋았다...진짜 좋았다.......그리고 이 낭독극의 부제가 리딩 인 더 다크인 만큼 조명을 끄거나 하는 연출이 많이 이용됬지만 사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안 봤기 때문이다.
아니 왜 모르냐고 하면 정말 안 봤기에 할 말이 별로 없다. 정말 극일부는 보긴 했지만 작품 전체는 정말 소리만 들었다. 왜냐면 작품이 어둠을 이용하는 만큼 sns에서 불을 끄고 작품을 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저녁에 불 다 끄고 컴퓨터의 디스플레이의 조명도 낮추고 누워서 눈을 감고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건 이것대로 좋지 않았나 싶다. 슌킨과 사스케가 가지고 있는 공허를 어떻게 보면 이런 형식으로 느낄 수 있고 작품의 소리만에 정말 철저히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맹인인 슌킨이 주요 화자 중 하나였기에 그렇지 다음 낭독극은 그냥 평범하게 듣지 않을까?싶다.
처음에도 말했다시피 슌킨의 사스케가 재배신되게 한 공은 이번해 12월에 열릴 낭독극 2탄인 사랑의 지옥변이다.

아쿠타카와 단편집에서 지옥변을 정말 인상깊게 본 것도 있고 모녀의 이야기에 관심이 큰 만큼 사실은 직접 가서 보고 싶어서, 이 이쿠니 프로듀스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회원권을 끊을까 고민도 했다. 그래야지 회원선행추첨에 당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원권 환화로 치면 3만원쯤 되는 이 돈은 지금의 나한테는 꽤 아까웠다. 회원특전은 이 선행추첨 하나말고는 이득이 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일단 일반 추첨에서 넣고 당첨되면 직접 가서 보고 아니면 그냥 편하게 집에서 보고자 한다. 근데 요즘 기력이 좀 없어서 돈 많이 써서 그 먼 도쿄가서 나한텐 큰 돈 내고 듣고 오기 보다는 집에서 편하게 더 싼 값에 배신으로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고....요즘 고민중이다.
이쿠하라 쿠니히코는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만화의 스토리를 담당하거나 이렇게 낭독극을 만들거나 이런저런 창작이 더 있다. 1탄에 이어서 2탄의 포스터도 그린 탐미적인 그림체로 유명한 나카무라 아스히코하고도 한 때 같이 협업해서 [이방인과 신부]라는 만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낭독극은 낭독그대로 진입장벽이 높고 이방인과 신부는 1권만 정발되고 끊겨버렸다....이런 것도 다 감상한 나로서는 국내에 더 많은 사람과 이쿠하라와 이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애니메이션만 유명하다........부탁이니까 이방인과 신부 재정발을 원한다......그리고 제2탄 사랑의 지옥변도 주목해주길 바란다....우리 이쿠하라 이야기 더 하자...한국어로 볼 수 있는 작품말고도...(억지 부리지 마.......(억지 부릴거야.......